본문 바로가기
  •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문화생활(공연,전시,영화, 책 )/책

[책소개]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by 55도 2024. 3. 12.
반응형

그의 작품 세계에서 전환점이 되었이며,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로 평가 받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었습니다. 이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는 그 후 톨스토이, 체호프, 핼프 엘리슨 등의 소설가와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저런 수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한 작품입니다. 1864년에 출간된 작품이고, 불과 2백여 페이지 밖에 안되는 소설이 이렇게 강렬하다니요.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독특한 소설입니다. 시간 상으로는 2부가 먼저 일어난 일이고, 1부는 그 사건 이후의 사색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1부가 먼저 배치된 덕분에 사색의 결과가 더 돋보입니다. 특별한 내러티브 없는 1부도 이야기만큼이나 인상 깊은데, 2부를 읽고 나니 그저 놀랍습니다. 

 

주인공은 업무적인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1부와 2부 초반 내내 그의 부적응에 관한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20년이나 지하에 가둔 사연은 매춘부 리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자신의 말을 그나마 들어준 유일한 인간인 리자. 하지만 주인공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 기회마저 놓치고 맙니다. 

나는 조금 전에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그러나 실은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끄럽고 무엇보다도 두렵고 내가 도둑질한 것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지. 왜냐하면 나는 허영심이 강해서 마치 껍질이라도 벗겨진 듯 공기가 닿기만 해도 아프기 때문이지. 너는 ()이런 실내복을 입고 있던 나를 네가 보았기 때문에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금 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니? ()그리고 또한 나는, 내가 지금 네게 고백하고 있다는 것들 때문에 용서할 수 없어! 

 

캐릭터도 좋지만, 끝까지 섬세하게 감정을 밀고나가는 힘이나 이야기의 리듬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주 긴 소설의 흐름에서 느끼기 어려운 작가의 에너지가 잘 드러났달까요. 인상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아래는 인상적인 문장들을 발췌해보았습니다. 

 

1부

나는 사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한 자도, 선인도, 비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가 없었다. 영리한 인간은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고 단지 바보들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비뚤어지고 무엇에도 쓸모없는 위안으로 나 자신을 흥분시키면서, 나만의 구석 에 처박혀 살아갈 것이다.

벽 앞에서 이와 같은 신사 양반들은, 즉 직선적인 사람들과 활동가들은, 진심으로 굴복하고 만다. 이들에게 벽이란 우리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처럼 방향 전환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그는 바보이다, 나는 이것에 관해 당신과 논쟁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마도 정상적인 인간이란 바보여야 할 것이다. () 이런 신사 양반들은 ()이미 내가 말한 것처럼 불가능 앞에서 그들은 곧 양순해진다. 그 불가능이란 돌벽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자연의 법칙들, 자연 과학의 결론들, 수학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내 앞에 돌벽이 있으며 그리고 내게 힘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돌벽 앞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2X2=4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그런 돌벽이 실제로 위안이나 평화에 관한 어떤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 

모든 직선적인 사람 들과 활동가들은 그들이 멍청하고 편협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근시안적이고 이차적인 원인들을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로 받아들인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자신들의 행동을 위한 흠잡을 데 없는 기초를 발견했다 고 확신하고 안도하게 된다. 

아, 신사 양반, 내가 자신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는, 내 전생애를 통해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았고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 인간은 학살이 정의라고 생각했으며, 편안한 양심으로 자신이 처벌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이는 누구든지 전멸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학살을 끔찍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 끔찍스러 운 일을 전과 똑같이, 심지어는 전보다 더 많이 행하고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당신 자신이 결정하기 바란다.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다. 두 다리를 가진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 

인간은 창조하고 개척하는 것을 좋아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왜 이때 인간은 또한 파괴와 혼돈을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것인가? 그 자신이 목표를 달성하고 공사 중인 건물이 완성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장기꾼처럼 목표를 달성하는 절차만을 좋아하 지, 목표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일이 끝났을 때, 돈을 받고 술집으로 가서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주일 내내 그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하이네는 믿을 만한 자서전은 거의 불가능하며 인간은 확실히 자신에 관해서 거짓 말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루소는 그의 고백록에서 확실히 거짓말을 했 으며 허영심 때문에 심지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하이네가 옳다고 확신한다.

2부. 

우리 시대의 모든 예의 바른 사람은 겁쟁이이고 노예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나는 이 사실을 확고히 믿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자라 왔다. 어떤 우연에 의해서, 현재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나는 조금 전에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그러나 실은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끄럽고 무엇보다도 두렵고 내가 도둑질한 것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지. 왜냐하면 나는 허영심이 강해서 마치 껍질이라도 벗겨진 듯 공기가 닿 기만 해도 아프기 때문이지. 너는 ()이런 실내복을 입고 있던 나를 네가 보았기 때문에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금 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니? ()그리고 또한 나는, 내가 지금 네게 고백하고 있다는 것들 때문에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되풀이하지만, 내게 사랑이란 학대와 도덕적인 우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상대방에게 자신을 학대하도록 허락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선에까지 와 있다. 나는 항상 증오로 시작했다. 그리고 도덕적인 정복으로 끝났다. 그리고 나는 정복된 대상을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발에 입맞주고 용서를 빌기 위해! 그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 내 가슴은 갈가리 찢어졌다. 그리고 결코, 결코 나는 그 순간을 무심하게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왜? (이 질문이 내게 떠올랐다.) 오늘 그녀의 발에 입맞춤했기 때문에 아마도 내일쯤이면 내가 그녀를 증오하지 않게 될까?

우리 모두는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는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정도에 따라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참된 <실제의 삶>을 거의 노동이나 근무 같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가 되어 있으며 우리 모두는 속으로 책에 씌어진 대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때때로 소란을 피우며, 왜 변덕을 부리며, 왜 바라는 것일까? 우리 자신도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이 말 때문에 당신이 내게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 이야기만 해라, 지하에서의 너의 불쌍한 삶을, 그러나 감히 우리 모두라고는 말하지 마라.」  ()나는 단지 내 인생에서 당신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도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 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 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