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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by 55도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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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라는 일본 작가의 결혼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작가는 "결혼은 왜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2017년에 나온 책이 맞나 중간에 다시 들춰봤을 정도로 다소 고루한 면이 있긴하지만, 포장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성실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덕분에 읽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결혼에 대한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글이 있다면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입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이 짧은 글에는 결혼에 대한 핵심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결혼 생활이 좋으려면 "좋을 때가 많아야 한다."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의 관점은 정반대입니다. 나쁠 때를 대비해서 결혼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래도 둘이면 서로의 보험이 된달까요. 한편으로는, 결혼을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본능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에서 드는 사례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개인적인 사례라서 반박할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본래 에세이라는 게 그런거다 생각하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재미로 읽다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도 꽤 있습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지라고 칭하지만 한편,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현상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성향이 보수주의인가 싶었습니다.

마음에는 안들지만 또 쉽게 무시하기는 어려운 독특한 매력의 에세이였습니다.

하단부터는 인용입니다.

좋은 배우자감은 이런 상황에 결코 당신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신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으, 추워! 책임자 나와라!" 하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 겠어요? 추울 때 "책임자 나와"라고 윽박지를 여유가 있다면 가방에서 손난로를 꺼내거나 목도리를 꺼내 두르는 게 맞지요.

다양한 '자신' 안에 어떤 특수한 조건에서만 발현하는 유일무이한 '진짜 자신'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다양한 모든 자신의 모습이 전부 동등하게 자신'인 것입 니다. 

함께 지내온 18년 동안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르칠 수 있 는 것은 다 가르친 셈이니, 그 결과로 "저는 이 사람을 선택 했어요"라는 자식의 통보에 "응, 그래" 외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갈등이라는 것은 '자기만의 판단 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한 생산적 프로세스입니다. ()오직 하나의 정답만 고집하다가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다 '정답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문제가 사라져버리는 흐름이 효율적이고 현실적 이라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현대인들은 '결정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결단이 신속하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다양한 갈등과 모순을 전부 늘어놓고 '으음.‘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행동과 가치관이 점점 비슷해지는 현상이 있었지요. 성별에 관계없이 너도나도 '돈과 권력, 명예'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에 성차가 사라진 것이지요. 이는 자본주의 시장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전개입니다. 노동자도 소비자도 규격화되 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노동자가 규격화, 표준화된다는 것은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노동자들이 닮아가기 시작하면 당연히 노동자들이 소비자로서 행동할 때의 패턴도 닮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관점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고용 창출은 오로지 '일손이 필요한' 산업 분야를 확대함으로 달성. 

그녀가 저를 먹여살리던 시절 에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예예, 알겠습니다" 하면서도 전 혀 거북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계를 책임 지게 되자 아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거북해지기 시작하더군요.()결국 결혼 관계란 어떤 의미에서는 '권력 관계'라는 걸 이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상사'인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불안정해집니다. 서로의 의견 을 들어보고 모든 것을 대화로 해결하자고 해도 이미 그 자체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결혼하면 이게 바로 나의 본모습이야 라고 믿고 있던 자신 의 자기동일성이 상당히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엔 전부 양보하고 나서도 무언가 남 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남는 것이 꽤 의외의 것'이라는 겁니다. '나만 의 고집'이라거나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라던 것들은 전부 양보하게 되고 오히려 '아, 내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 이야!' 하는 부분에 자기 존재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러니 상대가 불평을 늘어놓을 때는 그저 이쪽은 신문 을 넘기면서 "아, 그랬어?" 하는 반응 정도를 해주면 되지 않나요? 당신 정말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라고 상대가 추궁하면 "응, 듣고 있어. 듣고 있다구!" 하고 대응하면 됩 니다. "정말? 그럼 내가 5분 전부터 하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해봐"라고 추궁하면 그때는 후다닥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있었어요"라고 사과하 면 됩니다. 보통은 이런 상황까지 가는 경우는 없지요. 오랫동안 함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점점 듣지 않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이야기는 80퍼센트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보고, 연락, 상담을 요구하는 배우자는 사실 남편의 일상적인 행동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는 남편의 보고 속에 이따금씩 섞이는 평소와는 약간 다른 점'에 대한 자신의 고성능 감지 능력이 작동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그런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기쁨을 느낍니다. 본인은 기쁠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에선 그런 능력은 뭔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다른 일에 활용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가족 모두가 이 인사를 빠뜨리지 않고 잘만 한다면 일단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주눅 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외모를 칭찬한 후 "너한테 재 능이 있으니까 주위 사람들이 질투하는 거야"라고 추켜세 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질투'는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 이므로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부러움을 자극하는 것은 자주 다니는 식당 에서 유부우동을 먹고 있을 때 옆에서 새우튀김 우동을 주문하는 사람이거나, 나는 곤약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바쿠단(삶은 계란을 으깬 어육으로 감싼 오뎅의 일종)이랑 차가운 쥰마이 사케 주세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요.
자신의 수입보다 '약간 아래'를 기준으로 설정해 생활할 수 있으면 곤란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권태감이란 자기 인생에 질려버린 인간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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