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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바냐 아저씨, 안톤 체홉 (삶의 의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

by 55도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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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드라이브 마이카
2. 줄거리
3. 감상기

 
 
1. 드라이브 마이카

 
  안톤 체호프 작가의 바냐 아저씨(바냐 외삼촌)를 읽었습니다. 

  시공사에서 나온 체호프 탄생 150주년 기념 전집을 사두고 한참 못 읽었는데, 이번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고 궁금해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았습니다. 영화 내에서 희곡을 리딩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대사가 인상적이어서 기대가 됐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 영화의 줄거리에 영향을 줬다면, 바냐 아저씨는 소재로 기능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소재 이상으로 영화의 내용과 깊이 연결되어 있네요. 
 

난 행복을 잃었지만, 자부심은 남았어. 그런데 그 여자는? 젊음은 이미 지나갔고 아름다움은 자연법칙의 영향 아래 빛을 잃었지. 애인은 세상을 떠났고...... 그 여자한테 남은 게 대체 뭐야?

 
  위 대사는 회곡 중 주요인물의 대사는 아니지만, 희곡 전체의 내용을 축약하는 질문입니다. 결국, 자부심과 성실함, 사랑(혹은 욕망)과 권태로움이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며 빚어내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2. 줄거리
 
  약간의 스포가 포함됩니다. 
 
  엘레나는 늙은 학자의 두번째 부인이고, 소냐는 죽은 첫 번째 부인의 딸입니다. 첫 번째 부인의 남동생인 바냐와 의사 아스트로프는 엘레나에게 빠져있습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재밌는 점은 바냐와 아스트로프는 몹시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바냐는 늙은 학자(매부)의 학문적 성취를 위해 자신의 삶과 재산을 희생해 왔습니다. 반면, 이들을 1년 넘게 괴롭게 하는 엘레나는 남편에게 충실하지만 그저 삶이 권태로운 인물입니다. 한편, 소냐는 아스트로프를 흠모하지만, 그는 박색한 소냐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3. 감상기
 
  바냐는 지나온 삶을 부정합니다. 엘레나에 대한 애정이 매부를 증오하게 하는지 여기서 알 수 없습니다만, 학문적 성취 없이 끝난 늙은 학자를 위해 살아온 바냐의 삶은 허탈해 보입니다. 심지어 그 학자의 삶을 (게다가 ”여자들에게서 큰 성공을 한“) 실제로 마주했을 때 바냐의 혐오감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열심히 살아온 삶이 허탈한 결과를 맞이 했을 때. 
 
  엘레나에 대한 애정은 허탈함의 반대 급부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엘레나의 아름다움이 바냐에게 허탈한 마음과 혐오감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후자라면 바냐는 덜 비참하겠지만, 텍스트에서 어느 쪽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바냐는 연적인 아스트로프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만, 아스트로프만큼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그의 노동으로 생활하는 엘레나로부터 말입니다. 
 
  평범한 삶과 보통의 의지가 주는 아름다움.
 
  사랑받지 못하는 쪽은 소냐도 마찬가지 입니다. 곧고 착한 심성은 타고난 외모에 가려져 사랑받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저런 불만들이 한데 모아져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나고 맙니다. 하지만 소냐는 바냐를 위로하고, 영화 내에서도 아주 인상적이었던 아래 대사를 마지막으로 희곡이 끝납니다.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긴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세에서 말하도록 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이 우릴 가엾게 여기실 테고, 저와 외삼촌, 사랑하는 외삼촌은 밝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삶을 보고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뒤돌아보면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전 믿어요, 외삼촌. 뜨겁고 열렬하게 믿어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놓는다. (지친 목소리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착취당하고 버림받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삶. 하지만 그런 삶을 포기하지 않는 보통의 의지.
 
  '의지'라는 단어를 보면, 앞으로는 강한 집념이 연상되기보다는 소냐의 대사가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래는 일부 인상적인 문장들을 발췌하였습니다. 
 

아, 난 얼마나 속아왔던가! 난 저 교수를, 저 보잘것없는 통풍 환자를 숭배했고, 그를 위해서 황소처럼 일했어! ()난 그와 그의 학문이 자랑스러웠고, 그로 인해 살았고 숨 쉬었어! () 맙소사, 그런데 지금은? 그는 은퇴했고, 그래서 지금 그의 인생 결과가 드러났어. 그가 죽고 나면 단 한 페이지의 저작도 남지 않을 거야. 그자는 전혀 유명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람들 말로는 아버지는 인생에서 여자들에게 커다란 성공을 거두셨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이 아버지를 응석받이로 만들었다고요.

사람은 모든 게 아름다워야 합니다. () 하지만...... 그녀는 그저 먹고, 잠자고, 산책하고,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모두를 매혹시키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 도 아닙니다. 그녀에게 어떤 의무도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 분을 위해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무위도식하는 삶이 순수할 수는 없으니까요.

늙었고, 일하다가 지쳐버렸고, 몹시 천박해졌고. 모든 감정이 무뎌져서 이제 사람들에게 애착을 느낄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겁니다. 아직도 나를 사로잡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전체적으로 당신이란 존재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것도 있는 듯합니다. 당신이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오자 여기서 일하고, 떠돌고, 무엇인가 창조하던 사람들 모두는 자기네 일을 내팽개쳐 버리고, 여름 내내 당신 남편의 통풍과 당신한테 매달려야 했습니다. 두 사람, 당신과 남편은 우리 모두에게 나태를 전염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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