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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3권

by 55도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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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서 출간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3권을 읽었습니다. 

 

[전편 구성]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1,2권)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4권)
3편 게르망트 쪽 (5,6권)
4편 소돔과 고모라 (7,8권)
5편 갇힌 여인 (9,10권)
6편 사라진 알베르틴 (11권)
7편 되찾은 시간 (12,13권)

 

  중간중간 다른 책을 읽기는 했지만 완독하는데 1년 정도 걸렸습니다. 이 긴 이야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집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 내용이 집요합니다. 주인공의 알베르틴을 향한 감정 자체가 집요하니 이야기 내용이 그렇습니다. 주인공이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확인하며 고뇌에 빠지는 일련의 과정은 사랑이란 단어 이상으로 집요함이란 단어에 적합해 보입니다. 

 

"사랑의 영역에서 행복한 연적은 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은인이다. 하찮은 육체적 욕망만을 부추긴 존재에게 연적은 이내 거대한 낮선 가치를 덧붙이며, 우리는 그 가치를 존재와 흔동한다. 만일 연적이 없다면, 쾌락은 사랑으로 변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끄집어내고 빛으로 이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열정이며, 다시 말해 모든 이들의 감정이며 열정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인이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여인은 (중략) 탁월한 인간이 주 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고 훨씬 강렬한 감정을 끌어낸다."

 

 

  집필의 집요함은 정말 놀랍습니다. 13권의 긴 책이지만, 작가가 소설에서 주로 다루는 기간은 불과 10여년에 불과합니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주요 등장인물도 20명 내외입니다. 그만큼 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이나 복잡한 감정이 충분히 깊게 묘사됩니다.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과 집요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사건보다는 감정묘사가 많다보니 읽는 사람에게도 집요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이 갖고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단지,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캐릭터를 느끼는 차원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한 시대가 통째로 박제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내면까지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갖는 보편성도 느꼈지만 동시에 모든 시대의 인간이 지금 우리와 같지는 않다는 점도 같이 보였습니다. 철학적 사고의 단초가 되는 문장들도 풍성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책 후반부에는 보다 과감하게 작가의 예술론을 피력한 점도 좋았습니다. 

 

  책 전체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문장으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항상 서두르고, 도착했다 싶으면 떠난다네(샤를뤼스)

 

 

 

  [발췌]

  - 혹시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인상적인 문장들을 발췌해보았습니다. 

 

1. 그의 고뇌란 자기가 가 있지 않은, 함께 있을 수 없는 쾌락의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이 가 있다고 느끼는 고뇌다. 스완에게 고뇌를 알게 한 것은 바로 사랑으로, 사랑이 고뇌를 숙명적으로 만들고 (후략)

 

2. 멋쟁이가 우아함을 무시당할까 두려워 하는 것은 시골뜨기 앞에서다. 사람들이 낭비해 온 재치의 비용과 허영심에 의한 거짓말의 3/4은 항상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후략)

 

3. 사랑하지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반대로 ()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4. 자신에 관해서는 결코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무해하고도 조심스러운 말을 그들은 겉으로는 동의하는척() 가장 덜 호의적인 비판의 빌미가 된다. 

.

5. 한 인간이 가진 의도의 진실여부는 그 인간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며,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오해가 순진하게 고집부리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는 사실()

 

6. 한권의 책이나 집처럼 살롱의 장점은 근본적으로 버리는데 있다.

 

7. 삶의 많은 순간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없는 힘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미래를 바꾸려 할 때가 있다.

 

8. 현실이란 ()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삶에 관해 뭔가 정확한 세부사항을 알면, 그로부터 정확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고, 또 새로발견한 이 사실에서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찾기 때문입니다.

 

9. 우리는우리가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것만을 사랑한다. ()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에게는 야누스 같은 면이 있어서 그 존재가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할때는 상쾌한 얼굴을, 그 존재가 영구히 우리 소유 아래 있음을 알때는 침울한 얼굴을 보여준다.

 

10. 유행. 소심한 자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행동의 거대함에 압도되기 때문이지.

 

11.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거 속에, 잃어버린 시간 속에 있어서, 더 이상 우리는 그녀의 모든 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아름다움보다 더 소중한 그녀의 동일성.

 

12. 미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거를 단번에 맛보지 않고 한 알 한 알 맛본다.

 

13. 그 여인들이 가지고 있던 알베르틴 같은 요소는 오히려 그 여인들에게 부족한 알베르틴의 요소를 () 절감하게 한다.

 

14. 마들렌 맛이 주는 내가 현재의 순간과 아주 먼 과거의 순간에 동시에 느낀다는,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내가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 ()바로 그 순간 나였던 존재는 초시간적인 존재였고, () 사물의 본질을 통해서만 삶을 영위했고, 상상력이 개입하지 않는 현재, 감각이 본질을 제공할 수 없는 현재에는 본질을 포착할 수 없었다. () 이런 존재는 오로지 행동 밖에서만, 즉각적인 쾌락 밖에서만 내게로 왔고(), 그 때마다 유추의 기적이 ()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힘을 가졌고, 그 앞에서 내 기억과 지성의 노력은 언제나 좌초.

 

15. 내가 고정하려고 애쓰는 인상은 () 쾌락과 직접 접촉하기만 하면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여행의 환멸이나 사랑의 환멸은 () 물질적 쾌락이나 실제 행동에서 우리 자신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취하는 여러 다양한 양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깊이 깨달았다. 스푼 소리나 마들렌 맛에 의해 야기된 초시간적인 기쁨. 스완은 그 행복을 사랑의 기쁨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고, 예술적 창조를 통해 그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다.

 

16. 우리의 직관이 의무를 암시하고, 지성이 그 의무를 피할 구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에서 이런 핑계는 전혀 설자리가 없다() 가장 해독하기 힘든 그 책은 또한 실재가 우리에게 받아 쓰게 하고, 또 실재 자체에 의해 우리 마음 속에 인상이 만들어진 유일한 책이다. 삶이 우리 마음 속에 만든 물질적 형상, 즉 인상의 흔적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진리의 보증물이다. 순수 지성이 만든 관념들은 논리적 진리, 가능한 진리밖에 갖지 못한다. () 사물의 형상이라는 문자로 쓰인 책만이 우리의 유일한 책이다. 오로지 인상만이, 비록 그 질료가 빈약하고 그 흔적이 포착하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진리의 기준이 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포착할만한 가치를 가진 유일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정신이 인상으로부터 진리를 끌어낼 때. 인상만이 그 진리를 보다 높은 완성으로 이끌 고, 또 정신에 순수한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7. 한 시간은 그저 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향기와 소리와 계획과 날씨로 채워진 항아리이다.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동일한 순간에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감각과 추억 사이의 어떤 관계로서 작가가 서로 다른 두 요소를 자신의 문장에서 영원히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유일한 관계이다. 우리는 묘사되는 장소 안에 나타나는 모든 대상들을 하나의 묘사 속에 무한히 이어지게 할 수 있다.

 

18. 모든 인상 은 절반이 대상 속에 싸여 있고, 다른 절반이 우리 마음속으로 연장되어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서둘러 이런 마음속 인상을 무시하려고 하지만, 그 인상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전념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밖에 있어서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는 따라서 우리에게 어떤 피로도 유발하지 않는 대상 속의 인상 만을 고려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끌어내지 못하고 일종의 예술 독신자들처럼 그 저 쓸모없이 충족되지 못한 채로 늙어 가는가!

 

19. 지성의 진리로 말하자면 () 그 진리가 그리는 윤곽은 보다 메마르고 평평하고 깊이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건너야 할 깊이가 없으며, 또 그 진리는 재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성이 현실에서 직접 끌어낸 진실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느꼈다. ()순수함은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신이 스며든 소재를 내포할 수 있으며, 또 과거와 현재의 감각에 공통된 본질이 우리를 시간 밖으로 이동하는 인상들은 매우 소중하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드문 것이어서 그런 인상만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구성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 작 품의 이 모든 소재가 내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20. 그리고 우리가 슬픔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도출하고, 슬픔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면, () 어쩌면 조금은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 점에 대해 조금은 분노한다. 우리 삶의 최고 진리가 예술에 있다고 믿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고 알베르틴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기억을 되살릴 만한 힘도 없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의식조차 못 하는 예술 작품이 그들에게, 그 가엾은 이들의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해 어떤 성취감을 주었는지 자문해 본다. ()미지의 독자에 의해 내 추억 중의 하나를 모독 당하는 일을, 나는 독자들보다 먼저 실행했다. 거의 자신이 끔찍스러울 정도였다.

 

21. 어떤 것도 보편적인 것이 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정신은 그 자체로는 죽어 가기 때문에, 나는 작가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화가에게서 모델처럼 작가를 위해 포즈를 취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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