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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중해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55도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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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지중해 기행"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의 에세이 집입니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섬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일정 기간 소련을 지지했으나, 스탈린의 등장 이후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1945년에는 잠시지만 그리스 정부의 내각 일원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1943년)는 그리스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쓰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지중해기행-니코스카잔차키스


2. 감상 후기
 
  지중해 기행은 1926년에서 1927년 사이에 이루어진 저자의 여행기입니다. 여행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이집트와 이탈리아, 키프로스,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사이의 혼란스러운 유럽과 주변국들의 상황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이 주를 이룹니다. 출애굽을 하는 유대인, 이집트의 사후 세계, 로마에서 무솔리니를 만나서 나눈 대화, 오래된 사원에서 느낀 감상, 베두인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실로 폭넓은 작가의 정신이 필터 없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개인적으로 니체를 먼저 읽어서 그랬는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십 년도 넘었으니, 어릴 때 읽어서 그랬을까요.) 아무튼 종교, 인종, 역사, 세계지리를 잘 알고 계시다면 텍스트를 더 풍부하게 감상하게 되며, 잘 모른다면 절로 호기심이 생기니 어느 쪽이든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3. 문장들. 


>>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문장들입니다. 맥락이 없이 잘라냈긴 하지만 충분히  음미해 볼 만한 문장이 아닌가 합니다. 
 
보다 정선된 인간인 선장은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세이렌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그녀와 더불어 장엄하게 삶을 탕진하지. 가여운 인간들은 세이렌의 소리를 듣고도 믿지 않아. 조심스럽고 겁 많은 그들은 평생 금화 다는 저울로 <예-아니요>를 저울질하다 죽는 거야.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몸부림에 있다. 좀 더 분투하다 보면 <승리>를 향한 몸부림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보상을 비웃으며 용감하게 살다 죽는 것 인간의 가치는 오직 이것뿐이다. 보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이 몰락하고 그 엄청난 구조가 해체되는 그날, 동양 세계는 비로소 과거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에 새로운 씨앗을 제공하는 위치 말입니다. 지상의 심금을 울린 모든 종교 - 즉, 모든 씨앗들 -는 동양에서 나왔으며, 나는 이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양은 광기에 흘려 불타 버리죠. 서양은 수용하고 양육하고 정제하고 분석합니다. 다시 말해, 불꽃을 빛으로 바꾸어 놓죠..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행성에서 저 가공할 협력 - 남성성과 여성성의 협력 - 이 이루어져 온 방식입니다. 동양인은 유럽의 남편입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말한다.
내 딸의 몸값으로 천 냥을 원하오.!
신랑에겐 단 한 냥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베두인족은 본래 자존심이 강하여, 늘 이처럼 품위 있는 혼례 격식을 따른다.
장인이 천 냥을 언급하기 무섭게 족장이 벌떡 일어나 말한다.
당신의 딸은 2천 냥의 가치가 있고 신랑도 그만큼 주고 싶어 하지만, 나를 봐서 5백 깎아 주시면 좋겠소.
장인이 대답한다. 우리 족장님을 봐서, 5백 낮추겠소!!
이번에는 다른 친척들이 일어선다.
나를 봐서 5백 더 깎아 주시오! 5백 더! 50 더! 20 더.....!!
이런 식으로 계속 낮추어 가다 결국 한 냥이 된다. 그 순간 천 막 안에서 옥수수를 갈고 있던 여자들이 소리친다..
루-루-루-루!, 그러면 장인이 일어나서 말한다.
아, 좋소. 옥수수를 갈고 있는 여자들을 봐서. 내 딸을 반냥에 주리다!
협약이 조인된다. 첫날밤이 되면 그들은 먹고 마시고, 가진 것을 모조리 탕진한다. 그리고 다시 사막의 끔찍한 일상을 시작한다.
 
다른 땅과 다른 사람들을 알고 싶은 갈망, 그와 동시에 그들을 남겨 둔 채 황급히 떠나 버리고픈 갈망에 사로잡힐 때의 공포. 이 공포를 견뎌 내자면 대단한 힘과 초인적인 자제력이 요구된다. 마음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포근하고 사사로운 일상 속에서 노예화된다. 사람과 사물들 속에 휘말려 절규한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울부짖지도 껄껄대지도 말아야 합니다. 눈을 가려서도 안 됩니다. 침착하고 조용하게, 희망과 두려움을 모두 버리고 그 깊은 균열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막의 지고한 외침입니다.

현대의 매 순간은 기쁨으로도 슬픔으로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우리는 순간들을 거칠게 밀쳐내 버린다. 어서 빨리 다음 순간을 보려고.

다른 시대였다면 인간은 분명 파르테논의 엄격한 확실성 속에 계속 머무는 것을 행복하게 여겼을 것이다. 육신의 신념과 향기를 발산하는 이 쾌적한 오마르의 모스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신을 찬미하는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심장이 조급하게 고동친다. 억제할 수가 없다. 그것은 구별하기 위해 싸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심장이 아직 얼굴도 없이 끓어오르고 있는 자신의 신을 위해 미래의 신전 건설에 동참하고자 싸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자유를 잃어 가고 있다는 뜻이오. 당신은 지금 지구의 한 귀퉁이에 스스로를 결박하기 시작했소. 당신의 마음을 묶어 버린 것이지. 처음에는 당신의 마음에 모든 세상을 위한 공간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은 구별하고 선택하기 시작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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