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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왑샷 가문 연대기. 존 치버

by 55도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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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상, 전미 도서상, 미국 도서상, 도서비평가협회상, 미국 예술원 국민 훈장. 미국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한 이야기꾼 존 치버의 장편 소설입니다. "교외의 체호프"라는 별명이 있다네요. 낯선 작가였는데 이 소설을 계기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요>

 

원제 The Wapshot Chronicle
글 존 치버 | 옮김 김승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12월 5일 | ISBN 978-89-374-6192-7
패키지 반양장 · 신국변형 132x225 · 500쪽 | 가격 15,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192 | 분야 세계문학전집 192

 

왑샷가문연대기-표지

 

<감상기>

 

평범한 삶을 일구기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어려운지 흥미진진하게(?) 묘사해낸 소설입니다. 끝까지 읽고나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자기 이야기를 전달해내는 작가의 힘과 개성이 인물들의 매력과 함께 묵직하게 다가 옵니다. 대상을 신랄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면서도 따뜻한 관점을 가질 수도 있군요.  최근 알게 된  작가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반에 약간의 산만함을 참고 읽다가 처음 감탄한 부분은 오노라에 대한 묘사입니다. 한 챕터를 할애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담아냅니다. 삶의 의무를 다하고 태평하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노부인이 머릿 속에 그려집니다. 존 치버는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사랑, 무절제, 마음의 평화처럼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면전에 들이미는 것들을 피해 옆걸음질 하다가 그녀가 활기찬 노년의 수수께끼를 밝혀 낸 것 같기도 했다.
"희생타를 쳐, 바보야, 희생타를!" 그녀는 자신의 빛에 의지해 전 세계를 걸어 다니는 늙은 순례자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강한 남자처럼 몸을 일으키는 고결하고 강력한 나라를 마음의 눈으로 본다.

 

 

왑샷 가문은 항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에 나갔다옵니다. 리앤더는 모지스, 코벌리 장성한 두 아들의 아버지입니다. 이야기는 리앤더의 젊은 시절, 현재, 모지스와 코벌리의 현재가 교차되며 전개됩니다. 리앤더가 아들들과 낚시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화덕이 뜨거워지자 그는 햄버거를 몇 개 꺼내서 화덕 뚜껑에 올려놓고 녹슨 숟가락으로 뒤집어가며 익혔다. 마치 위생과 질서에 관한 아내의 훌륭한 생각들을 무시해 버리는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자신들이 아주 외진 곳에 와 있다는 섬세한 느낌이 화덕의 열기로 지나치게 뜨거워진 오두막 안으로 들어오 는 것 같았다.
자신이 낚시 여행에 요리 책을 가져온 것은 자신과 아버지를 실망시키 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성을 기리는 신비의 의식을 더럽히고 ()후손들까지도 실망시키 는 짓이었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결혼 전 리앤더는 휘티어사에서 착취를 당합니다. 약 100년 전의 미국은 지금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여 쉽게 공감됩니다. 

나 대신 뉴욕에 가 주게. 거기서 내 고객 들을 만나. 자네가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주문을 받게. ()이 회사를 자네 어머니처럼. 

결심을 적어 놓은 공책을 훑어보았다. 부정한 생각을 피한다. 걷지 말고 항상 뛴다. 미소를 짓는다. 절대 인상을 쓰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씩 체육관에 간다. 어머니에게 회색 비단 원피스를 사 드린다. 이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작가의 시적이고 섬세한 감정묘사는 코벌리의 사랑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기쁨에 들떠 소리 지르고, 춤추듯이 발을 차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냥 해변을 걸으며 물 위에 뜬 것들을 파도 너머로 집어 던졌다. 그가 던진 물건들은 수면을 스치듯 날아가기도 하고, 그냥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만족감과 함께 커다란 슬픔이 그를 감싸는 것 같았다. 워낙 섬세한 기쁨이라서 가을에 처음 피운 불처럼 그의 살갗과 뼈를 따스하게 데워 주었다. 그는 여전히 물에 뜬 것들을 주워 던지면서 천천히 그녀에게 되돌아갔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으니까.

세상의 법과 관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과 활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마음.

 

 

 

우스꽝스럽기도, 한심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의 주인공 리앤더가 "아들들에게 주는 충고."라고 써 놓은 쪽지 내용도 재밌습니다. 

"건조한 지역이나 나라의 경계선을 넘어갈 때는 절대 위스키를 보온병에 넣지 마라. 고무 때문에 맛이 변할 것이다. 절대 바지를 입은 채 사랑을 나누지 마라. 위스키에 맥주를 타는 건 아주 위험하다. 맥주에 위스키를 타는 건 전혀 겁낼 필요 없다. 위스키를 마실 때는 사과, 배, 복숭아 등을 절대 먹지 마라. 프랑스 식으로 오랫동안 만찬을 즐기면서 맨 마지막으로 과일을 먹을 때만 빼고. 다른 음식들이 진정 효과를 내니까. 달빛을 받으며 잠들지 마라. 과학자들 말로는 그것이 광기를 불러온다고 한다. ()시가는 손가락과 직각으로 들지 마라. 촌스럽다. 시가는 대각선으로 들어라. 밴드는 떼어 내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절대 빨간 넥타이를 매지 마라.
여자들이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 가볍게 코웃음을 쳐라. 약한 여자들에게 그보다 더 심하게 굴었다가는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아침마다 찬물로 목욕해라. 고통스럽지만 기분이 상쾌해진다. 욕망도 줄여 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머리를 깎아라.
저녁 6시가 지나면 어두운 색 옷을 입어라. 아침 식사로는, 구할 수 있다면 신선한 생선을 먹어라. 온기 없는 석조 교회에서 무릎을 꿇지 마라. 교회의 축축한 습기 때문에 머리가 빨리 센다. 공포는 녹슨 칼날 같은 맛이 난다. 그것을 절대 집 안에 들 여놓지 마라. 용기에서는 피 맛이 난다. 꼿꼿하게 서라. 세상에 감탄해라. 부드러운 여자의 사랑을 즐겨라. 주님을 믿어라."

 

 

리앤더가 자신의 장례식에서 읽어주기를 바란 대사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내가 예언했듯이, 우리의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으며, 이제 공기 속으로, 허공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들이며, 우리의 하찮은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 -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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