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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by 55도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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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성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장편 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는데, 최근작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뉴랜드 아처)와 미셸 파이퍼(엘렌 올렌스키), 위노라 라이더(메이)라니, 캐스팅도 엄청나네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글 이디스 워튼 | 옮김 송은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7월 18일 | ISBN 978-89-374-6183-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60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3 

 
 
중반부까지는 촘촘한 감정선을 잘 만들어낸 섬세한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후반부는 꽤나 강렬합니다. 
정교함과 대담함. 큰 기대 없이 읽다가 오랜만에 크게 한방 먹은 기분입니다. 
 
미국 문학에서 비운의 올렌스카 부인처럼 매혹적인 여성은 없었다. - 고어 비달(소설가, 극작가)
 

순수의시대-위노라라이더

2. 감상기
 
1870년대의 뉴욕의 사교계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습니다. 유럽에 비해 훨씬 보수적인 뉴욕의 모습도 신기하고, 유럽에 비하면 명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가문들이 가문에 집착하는 모습도 풍자적입니다. 한 시대를 정교하게 잘 담아낸 것만으로도 좋은 소설이라 할만합니다. 
 
이 소설은 더 나아가 보편적인 결혼제도,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이 돋보입니다. 잔혹한 남편을 피해 뉴욕으로 돌아온 엘렌. 그녀에 대한 이중 잣대는 그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묶어 놓습니다. 하지만 이디스 워튼은 세태풍자에 머물지 않고 엘렌 올렌스카라는 인상적인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의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평범한 듯 태생적인 자유로움과 정면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압축적으로 아래 문장에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곳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내 말을 들어요. 그들은 모두 잘못된 역에서 내렸어요. 불로뉴, 피사, 몬테카를로 같은 곳 말이죠. 그곳은 그들이 뒤에 두고 떠나온 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더 작고 음침하고 난잡하다는 것만 빼고 말이죠." 
"그래, 고르곤이 당신의 눈물을 말려 버렸군요." 그가 말했다.
"흠, 고르곤은 내 눈을 띄워 주기도 했어요. 고르곤이 사람들을 눈멀게 한다는 얘기는 틀린 말이에요. 그 반대죠. 사람들의 눈꺼풀을 뜨고 있게 고정시켜서 다시는 축복 같은 어둠 속에 있지 못하게 만들죠. 그런 식의 중국 고문이 있지 않아요?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아, 내 말을 믿어요. “

"아, 난 그런 건 뛰어넘었소." 그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아뇨,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결코 그 테두리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난 넘어가 봤어요." 그녀가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거기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요.

 
한편, 메이와 메이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첫 여섯 달 동안이 제일 힘든 법이라는 흔한 격언을 위안 삼았다. 그 시간만 잘 넘기면 서로의 모난 면들이 닳아서 둥글둥글해지게 될 거 야 그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메이가 가하는 압력이 그가 가장 날카로움을 잃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모난 부분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짧은 연애 기간에는 메이에게도 자기의 시와 로맨스가 있었지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닮은 꼴이 되어 가고 있었고, 기이하게도 바로 그 과정을 통해 남편을 웰랜드씨로 바꿔 놓으려 하는 중이었다. 

 
시대를 담은 정교함, 내용의 보편성, 캐릭터의 말과 행동 모두 인상적이었고, 거기에 아래 일부 문장 발췌에서 볼 수 있듯이 통찰력 있는 문장들 덕분에 풍성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일부 발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원칙이 늘 얼마나 단순했던가를 절감했다.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로 통했고, 가련하리 만치 어리석은 솔리 러시워스 부인과의 밀애도 세상에 다 알려져서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기분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워스 부인은 어리석고, 허영심 강하고, 원래 비밀을 좋아하 는 성격이어서, 그의 매력이나 능력보다는 밀애에 따르는 비밀스러움과 위험에 훨씬 더 끌렸던 '그렇고 그런' 여자였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때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그 사건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즉, 그녀와의 정사는 그 또래 젊은이들 대다수가 한 번은 겪고 ().

그녀는 젖은 속눈썹을 내리고 보일락 말락 미소했다. 난 이제 외롭지 않을 거예요. 전에는 외로웠어요. 두려웠지요. 하지만 공허함과 어둠은 사라졌어요. 이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니 한밤중에도 항상 밝게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에요.

죽은 사람이 메이라면! 그녀가 죽는다면. ()따스하고 익숙한 방에서 아내를 바라보며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기분은 너무나 이상야릇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어서, 그 순간에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생각인지도 바로 와닿지 않았다. 

너그럽고 충실하고 늘 한결같았지만, 상상력이 너무나 빈약하고 절대 성숙할 줄 몰라서 젊은 시절의 세계가 산산이 와해되고 재건되어도 끝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변화를 인식할 줄 모르는 그녀의 무능력함 때문에 아채가 자기 견해를 그녀에게 감추듯이, 자식들도 엄마 앞에서 자기들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메이는 세상이 자기 집처럼 사랑과 조화 넘치는 가정으로 가득한 좋은 곳이라고 믿으며 죽었다.

의무를 다한다는 것의 가 정 나쁜 점은 그 밖의 다른 일을 하는 데는 분명히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당연히 얻을 줄 알지만, 우리는 거의 항상 당연히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지. 단지 궁금한 것은·····, 앞일을 훤히 예상할 수 있다면, 그래도 심장이 거칠게 뛸 수 있을까?

"예,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죠. 저만 곁에 부르셨을 때 말이에요. 기억나시죠?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안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옛날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청에 따라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래요." 아처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는 짙어 가는 어스름 속에서 발코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왔 고, 잠시 후 하인이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걷고 덧문을 닫았다. 그것이 마치 기다리던 신호이기라도 한 듯, 뉴랜드 아처는 천천히 일어나 호텔로 혼자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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