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벨로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보여 준다.
-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솔 벨로의 책 <오늘을 잡아라, Seize the day>를 읽었습니다.
주된 인물이 불과 세명에 불과하고, 뉴욕의 한 호텔과 그 주변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내용은 인간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보여줍니다. 솔 벨로의 작품은 처음 읽어봤지만, 소설의 기법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히 개성 있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 또 다시 한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위 문장은 소설의 주인공 토미 윌헬름을 가장 잘 표현했습니다. 그는 소위 실패한 인물이지만, 단순한 인물은 아닙니다. 한편 주인공을 고뇌에 빠트리는 템킨 박사는 아래처럼 꽤나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인간입니다.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윌헬름의 아버지는 성공한 기성세대로 돈과 평판에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사회의 시선을 대변하죠.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자녀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자기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실패한 인생으로 보일 뿐입니다.
작가는 해학적인 표현도 잘 사용해서 인간 보편에 대한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날카롭지만 냉소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못난 토미와 템킨에게도 일말의 진실과 진심이 있습니다. 자기 삶을 그저 아무렇게나 버려두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 만약 그 고생마저 없어지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윌헬름은 생각했다. ()이 사기꾼도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나는 살아남으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오히려 궁극적인 목적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생애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할까?
멋은 고사하고 철저히 이기적이고 한심하고 변명 뿐인 인간이지만,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문학은 단순한 것이 실은 복잡한 것임을 끈질기게 지켜보는 일이다”는 신형철 작가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일부 발췌>
아무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윌헬름은 성공한 사람들의 냉소 주의를 보면 특히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유달리 피곤이 느껴질 때면, 그는 냉소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욕망으로 빛났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베니스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 었다. 그 또한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원하느냐. 그러면 두 배로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최소한 두 배로! 일해! 이 게으름뱅이야.' 그래서 남자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해 가며 돈을 벌어 아내에게서는 해방되지만, 결국에는 회사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되죠. 회사는 남자가 봉급을 받아 가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실컷 부려먹어요. 저에게 해방되라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순수입이 100만 달러쯤 되는 부자는 아마 그 돈으로 아내에게서 해방될 수 있겠죠. 그리고 가난뱅이는 아무도 그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해방될 수 있겠고요. 하지만 저 같은 위치에 있는 놈은 죽어서 꼬꾸라질 때까지 땀 흘려 일해야만 하죠"
탬킨 박사가 말했다. "나는 진찰료가 필요 없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진단할 수 있지. 오로 지 내가 좋아서 진찰할 때지. 금전적인 보상 없을 때야. 나는 사회적 영향들을 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멀리 떼어 놓지. 특히 돈으로부터 말이야. 정신적 보상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이 양반은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 왜 이다지도 모를까? 왜 사람들은 자기가 말하는 의미를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가정하는 걸까? 아니다.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행성들도 모르고, 별들도 모르고. 끝없는 우주도 모른다. 플랑크 상수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맞히지 못한다.
생각해 봐라, 생각해 봐! 누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가? 이런 유형의 노인들이다. 돈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돈이 필요 없는데 돈 이 있고, 나는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 그 반대로 된다면 일이 굉장히 쉬워질 텐데.
그녀는 자신이 공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했다. ()누군가 숨을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얌전하고 공정한 것. 이것이 약한 자의 태도이다. 그러다가 세게 후려친다.
그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특이한 목적이랄까 본질이랄까 하 는 정교한 표정이 있었다. 나는 노동한다. 나는 소비한다. 나는 노력한다. 나는 기획한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매달린다. 나는 지지한다. 나는 양보한다. 나는 질투한다. 나는 갈망한다. 나는 멸시한다. 나는 죽는다. 나는 숨는다. 나는 원한다. 빠르게,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어떤 사람의 표정도 알아맞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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