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출퇴근 시간은 어차피 죽은 시간이다. 스마트폰 데이터는 반강제로 항상 없으니 그저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둘 중 하나.
닫힌 선택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민음사 전집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니체도 한나 아렌트도 다 거기서 읽었다. 메모도 하고 정리도 해가며 한권씩 읽었다. 아깝지 않은 죽은 시간이지만 덕분에 오롯한 내 시간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시람이 되었다면 모두 그 덕분이다.
회사에서 짬나는 시간은 작년부터 상식을 넓히는 시간으로 횔용하기 시작. 매일매일 문장암기, 세계지도, 우쿨렐레, 프랑스어, 영어회화, 그림탐색 등등.
쇼핑으로 헤매던 시간을 보너스를 받는 기분.
정작 메인 시간인 주말은 자잘한 일로 가득하다. 주택 생활이 내 선택이니 받아들인다만 매번 초조함은 사실이다. 자잘한 일을 하며 초조해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글을 의외의 책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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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 인터뷰 (스타벅스 펭귄북스)>
인터뷰 내용도 좋지만 작가의 책 중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한다.
요즘 나는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으레 발코니에 나가 있다.
햇빛, 흙, 장갑, 수도꼭지, 그리고 전날 밤 미리 물을 받아둔 양동이가 있는 곳이다. 거기서 죽어 가는 식물의 화분을 갈아 주고 가지를 쳐주고 해충 잡는 일을 하다 보면 문득, 너무 맹렬하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절박하게 하네, 이렇게 끝을 보고 다시는 하지 않을 사람처럼 하네, 싸우듯이 하네. 내가 너무 그랬나 싶어서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으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발코니의 순한 잎들, 그리고 들려오는 춤, 기억, 꿈, 지시, 나무, 눈, 귤, 찬물로 만 국수와 안녕안녕 같은 말들.
그렇게 일렁이는 말들이 마음의 안팎으로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오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제야 찾아드는 텅 빈 평안이야말로 대상을 지정할 필요도 없는,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중에서
식물에게는 지금 이곳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식물들의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 낸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 삶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 그렇게 자기가 놓인 세계와 조응해 나가는 것. 이런 질서가 있는 내일이라면 낙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식물적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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