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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공연,전시,영화, 책 )/영화

[영화] 탑, 홍상수 감독.

by 55도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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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여행자의 필요> 개봉을 앞두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탑>을 감상하였습니다. 냉소의 대상이나 날카로움은 좀 다르지만 홍상수의 초기작들이 생각나는 영화 <탑>을 보고 나니 후속작인 <우리의 하루>, <물안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몹시 궁금해지네요. 
 
 
1. 개요
 
개봉 : 2022.11.03.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98분
배급 :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등장인물     
병수 : 권해효 , 해옥 : 이혜영, 선희 : 송선미, 지영 : 조윤희, 정수 : 박미소
 

 
2. 줄거리+감상
 
  꽤 잘 알려진 중년의 영화감독 병수(권해효 분)가 그의 딸 정수(박미소 분)와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해옥(이혜영 분)의 건물에서 만납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정수를 해옥에게 소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병수와 해옥도 막역한 사이는 아닌 듯합니다. 심지어 병수와 딸마저도 5년 만에 만난 사이입니다.
 
  대사 몇 개와 표정만으로 해옥은 속물로 보입니다. 유명인을 대하는 자세, "너무 비싸지 않은 마실만한 와인"  (나중에 나오지만 정가가 만원인 마주* 와인) 을 달라는 대사, 자기 임차인이 생활하는 집의 비밀번호를 열어 건물 전체를 보여주는 모습까지 보기만 해도 온몸이 오그라듭니다.
  
  건물을 구경하고 병수는 제작자와 미팅을 위해 자리를 비웁니다. 1시간만 비운다던 병수는 와인 2병을 마시도록 오지 않습니다. 집에서의 병수와 밖에서의 병수가 다르다며 콕 짚어내기도 하고, 말투도 행동도 당당하던 젊은 정수 역시 해옥과 둘만 남게 되자 당황스러울 만큼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섭니다. 
 
  민망하고 민망한 대사들을 지나, 여기서 영화는 미래로 넘어갑니다. 다시 만난 병수와 해옥. 그들은 건물 2층에 있는 선희(송선미 분)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십니다. 
 
 
(약스포)
 
  2층. 식당부터는 오랜만에 홍상수식 민망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해옥은 배제되고 병수와 선희는 둘이 느끼기에는 은밀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노골적으로 호감을 보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타인에게는 분명하고 착오 없이 나타나는 인격이 자신에게는 은폐되기 쉽다."는 말을 했는데 비슷한 맥락의 영화적 표현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노골적인 욕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참 불편하고 어색한 일입니다. 거기에 '별거'에 대한 병수의 이야기는 홍상수 감독 본인의 이야기와도 닿아있죠. "깔깔 읏으며 구르면서", "동의하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라는 선희의 평 역시 홍상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보여 재밌습니다. 
 
  3층. 별안간 화면이 넘어가며 다시 미래로. 병수와 선희가 함께 3년 정도 산 시점으로 넘어갑니다. 그동안 병수는 몸이 좋지 않아 영화 일을 쉬었습니다. 밥이 안 넘어갈 정도의 현실적인 대화들. 병수는 돈만 보는 영화 제작자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명성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병수의 상태에 지친 선희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침대에 누워 " 혼자가 좋아"라고 뒹굴거리는 모습은 가련하기도, 우습기도 합니다. 홍상수 영화 초기에 많이 보이던 남성 캐릭터입니다. 
 
  4층. 또 몇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영(조윤희 분)은 거침이 없습니다. 한우, 섹스에 대한 칭찬, 소주, 새 담배, 산삼.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파상공세입니다. 게다가 가스라이팅 하듯  여유 있는 미소와 말투. 병수를 아이 다루듯 하지만, 병수는 꽤나 행복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1층. 영화는 갑자기 과거로 다시 돌아옵니다. 제작자를 만나고 돌아온 병수는 술을 사가지고 들어오던 정수를 만나고, 꿈인지 현실인지 상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이 영화는 끝납니다. 
 
 
 
3. 감상기
 
  한동안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조금 따뜻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탑>을 보니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초기작들에서 특정 성이나 계층들의 위선에 대한 날카로움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면, 이번 영화는 대상이 확장되고 대신 날카로움은 좀 덜한 느낌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한층 깊어진 느낌입니다. 
 
  홍상수 감독 특유의 구어에서 쓰일법한 반복적인 단어나 말투도 대사에 잘 살아 있지만, 유난히 배우들의 연기도 한층 인상적입니다. 특히 권해효와 송선미 배우는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정말 셋만 혹은 둘만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실제 부부라는 권해효와 조윤희 배우의 연기도 정말 자연스럽습니다. 촬영환경이 궁금해지네요. 
 
 
  현실과 영화가 2중, 3중으로 얽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몇가지 공유해 보자면,
 
   ▷  3층에서는 감독 병수, 4층에서는 남성으로서의 병수가 보입니다. 1층 대화에서 밖과 안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데, 그 모습을 나눠 보여주면서도 이야기로 연결되어 재미있는 시도로 느껴졌습니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랄까요. 

   ▷ 처음에는 월세를 반만 받는다더니, 제대로 고쳐주지도 않으면서 제멋대로 드나드는 이상한 집주인. 영화 제작과 창작 환경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보입니다. 
 
   ▷ 사회적 조건, 의무와 욕구가 뒤섞인 삶에 대한 통찰과 함께,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는 관계를 이전 영화보다 더욱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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