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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공연,전시,영화, 책 )/영화

[영화] 그린 파파야의 향기, 트란 안 홍 감독

by 55도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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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 <그린 파파야의 향기>를 감상했습니다. 트란 안 홍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영화화를 했다가 혹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준 1994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벌써 20년이 됐군요. 사실 예전에 한 번  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한번 감상했습니다. 감상을 요약하자면, 가까이 두고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가끔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린파파야의향기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1951년 베트남. 10살 무이는 부자집의 하녀로 들어갑니다. 부자집의 부부에게는 장성한 아들과 무이 또래의 아직 어린 아들 둘과 노마님이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잃은 안주인은 무이를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하지만 남편의 방랑벽이 도져 가세는 서서히 기울게 됩니다. 세월은 흘러 소녀에서 아가씨로 성장한 무이는 여주인 가족의 지인이자 연모의 대상이었던 피아니스트 쿠엔의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감상기>(약스포)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부드러운 대조입니다. 아이들의 짓궃은 장난과 무이의 천성적인 순수함과 천진함이 대조를 이루고, 안주인의 넓고 따뜻한 마음과 노마님의 고집이 또다른 대조를 이루기는 하지만 둘다 무거운 갈등으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순수함과 따뜻함이 작은 장난과 고집을 모두 덮어버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카메라 움직임 역시 잔잔한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끊임 없이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며 등장인물들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따라 이야기가 나아갑니다. 리듬과 강약조절이 좋아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베트남의 요리 또다른 재미 요소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파파야를 요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0살의 무이가 20살의 무이가 한번씩 요리하는데, 독특한 도구와 만드는 방식도 인상 깊습니다. 

 

20대의 무이가 나오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아주 인상적입니다. 10대의 무이와 연속성이 보이면서, 욕구를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않는 무이의 역할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뒤로 갈수록 사운드도 큰 역할을 합니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시종일관 귀뚜라미, 새 등 자연의 소리와 음악이 번갈이가며 아름다운 영상과 조화를 이룹니다. 특히 드뷔시의 달빛이 아주 인상적으로 쓰입니다. 

 

 

영화의 큰 주제는 '사랑의 무한함과 순수함'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마님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한 할아버지, 무능하고 방랑벽이 있는 남편에 대한 지순한 부인의 사랑, 그리고 쿠엔에게 반한 10살의 무이의 첫사랑. 아름답지만 실패로 끝난 앞의 두 사랑에 비해 무이의 사랑은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개인적인 감정이고, 무이의 사랑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않았겠죠. 사랑의 무한함과 순수함이 영화를 이끄는 한 축이라면, 영화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변화 과정도 잘 보여줍니다. 사별한 남편, 여성의 한계로 이뤄지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 사회적 변화와 함께 무이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녀의 옛 여주인은 무이의 사랑이 이룰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발판 역할을 합니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장신구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일깨웁니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는 정교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미지와 함께 전개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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