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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공연,전시,영화, 책 )/영화

[영화] 키리에의 노래.

by 55도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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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는 러브레터, 4월이야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슈슈의 모든 것 등으로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의 ‘키리에의 노래’입니다.

키리에의노래-이와이슌지
키리에의 노래. 포스터


큰 기대없이 감상했습니다. 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푹 빠져서 봤습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기분으로 극장에서 나왔습니다.

아직 개봉 중인 영화라 아예 나눠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감상 전에 읽으셔도 좋습니다.

이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 영화 일련의 특징이 잘 담겨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있고,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가 있습니다. 거기에 퍼즐 맞추듯 집중해서 따라가야하는 뒤섞인 이야기 구조가 있고, 러브레터에서 우리를 몹시 헷갈리게 했던 1인2역도 있습니다. 가벼운 로드무비 형식도 여전하고, 채도가 낮지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아름다운 영상도 그대로입니다.

몇몇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마치 나에게 시간이 무한하게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의 기승전결이 느슨해지면서 결론에 대한 궁금증보다 이야기 자체에 빠져드는 경험입니다. 계속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키리에의 노래를 보면서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영화의 주인공인 키리에(아이나.디.엔드)역의 배우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감상이 갈릴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아주 약간 저항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오, 이것봐라. 이게 배우가 하는 노래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가수라는 걸 알았습니다. ‘오, 이게 가수가 하는 연기란 말인가.‘라고 하기에는 살짝 아쉽습니다.)

아이나디엔드
아이나 디.엔드.

 
잇코 역의 히로세 스즈의 연기도 좋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스즈 역을 잘 그려냈던 히로세 스즈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눈빛과 고집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배우입니다. 처음에는 키리에가 잇코의 도움을 통해 성장하는가 싶었는데 화려하지만 불안정한 삶 속에서 키리에를 다시 만난 건 어쩌면 잇코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히로세스즈-아이나디엔드-키리에의노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재난과 생각을 멈춘 무지막지한 공권력 앞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사랑도 가족도 아닌 우정 뿐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깊지도 무겁지도 않아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게 우정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생각보다 비중있게 다뤄진 잇코와 키리에의 순수한 우정은 2018년 훗카이도의 쌓인 눈 속에서, 2023년 도쿄의 바닷가 시퀀스에서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주인공들만큼이나 음악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뮤지션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하는 모습이 상당히 쿨하고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여러번 반복되는 두 곡은 낯설다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음악적인 살이 붙으면서 더 좋아집니다. 특히 '연민의 찬가'가 그렇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꽤 근사합니다. 보컬도 무대를 위해 아껴놓은 듯한 감정이 선명하고 풍부하게 전달됩니다. 공연을 보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찾아도 좋다는 감독의 인터뷰가 영 헛말은 아닙니다. 3시간반짜리 감독판에는 좀더 공연영상이 담길까 궁급합니다.

지금 너무 즐겁거든요.
즐거운 시간은 영원히 계속되진 않거든

일단 떠나자.
모두가 바다에 있을거 같아요.



2. 감상 후에 읽어보신다면.

시간 순으로 줄거리를 정리를 해봤습니다.

키리에(언니)와 나츠히코는 사랑에 빠져 고등학생인 상태로 혼전임신을 하게 됩니다. 둘은 아이를 낳기로 합니다. 하지만 나츠히코는 제 성적을 못내고 오사카에 있는 대학에만 합격합니다. 나츠히코는 키리에와 헤어지고 싶지만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둘의 통화 중 지진과 쓰나미가 이어지고 언니 키리에와 가족들은 모두 죽고 동생 루카만 살아 남습니다.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루카는 충격으로 말을 잃습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는 사람인 나츠히코를 찾아 2011년 오사카에서 혼자 생활합니다. 그러던 중 교사 후미에게 발견되고 후미는 루카의 언니 키리에를 찾고 있던 나츠히코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나츠히코는 죄책감에 대학 진학을 포기합니다. 루카를 책임지려고 하지만 공권력은 둘을 떨어뜨립니다. 서로 계속 의지하려고 하지만 제도상 둘은 함께 지낼 수 없습니다. 2018 훗카이도. 나츠히코는 잇코의 영어 과외 교사로 일합니다. 잇코가 루카와 같은 학교를 다닌 다는 걸 알고 둘을 소개해줍니다. 밝은 잇코는 한학년 아래인 조용한 루카에게 다가갑니다. 

2023 도쿄. 우연히 잇코와 루카는 다시 만납니다. 루카는 언니 키리에의 이름을 따라 키리에라는 버스킹을 하는 인디가수가 되어 있습니다. 잇코는 아주 화려한 삶을 사는 듯 합니다. 하지만 사실 대학에 합격했으나 가정문제로 결혼을 빙자한 사기를 치는 신세가 됐습니다. 잇코는 조용한 키리에의 매니저가 되어 세상에 알립니다. 노래가 반복되고 사람들이 늘어나고 적지만 그녀를 알아주는 뮤지션들이 모이는 과정이 화면에 차곡차곡 담깁니다. 결국 잇코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둘은 여전히 마음이 통합니다. 함께 바다로 향하는 시퀀스는 익숙하지만 아름답습니다.

잇코의 수사로 키리에는 다시 나츠히코를 만나고 둘은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버스킹이 아닌 키리에(동생)의 첫 무대가 경찰의 방해 속에서 계속 되고, 잇코는 무대를 보러 가던 중 배신당한 남자의 칼에 찔립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키리에가 마지막에 새로운 친구를 만날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3. 나가며

언니 키리에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을까요.  나츠히코의 머뭇거림 덕분에 설사 키리에가 예감은 했더라도 마지막까지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삶으로 속죄하는 나츠히코의 모습은 안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미안한 마음은 키리에의 동생에게는 세상과 닿아있는 유일한 끈입니다. 가까스로 이어진 그 끈은 키리에의 노래로 연결되어 간신히 세상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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