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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1994년 한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55도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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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추천영화.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수상(김보라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박지후 배우 주연의 영화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9)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미 들었는데 얼마 전에야 감상했습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에서 모니카 마론의 소설을 두고 “소설이 한 개인의 삶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지를 이 소설은 탄식이 나오도록 입증한다.”라고 했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소설을 영화로 바꿨을 때 영화 벌새가 모니카 마론의 소설과 같은 목표 의식을 갖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1. 한줄평
2. 줄거리
3. 감상평
4. 관련 추천 영화


1. 한줄평

  - 1994년 한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줄거리

  은희는 평범한 여중생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공부를 조금 못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그 당시(1994년) 기준으로는 조금 이르게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은희의 부모님은 대치동에서 함께 떡집을 운영합니다.  

(약스포)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족 간의 관계는 조금씩 악화되지만 해소 지점이 있습니다. 오빠는 다른 동생이 성수대교 참사에 희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펑펑 우는데 이 모습을 보고 은희의 마음은 조금 풀립니다. 은희에게 생긴 혹을 제거하면서 아버지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며 은희의 감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합니다. 소위 알파 메일이 되지 못한 우울함이 폭력으로 불쑥 튀어나오지만, 보호 혹은 의무라는 가부장적 방식의 한계 안에서 나름대로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희에게는 각박한 세상을 버텨내는 힘이 됩니다. 


  한편, 은희는 명확한 지향은 아니지만, 이성애와 동성애를 겪습니다. 묘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마음이 결합되어 첫 키스를 하고 또 이별을 겪습니다. 그 와중에 동성 친구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고 다시 결별하는 등 복잡한 감정선이 전개됩니다. 그녀가 사랑에 대해서 겪는 총체적인 감정은 실망으로 보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도 위기의 순간에 실망감을 줍니다. 하지만 실망하되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조금씩 세상을 탐색해 나가며 성장합니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 맘 놓고 의지할 데 없는 상황에서 의외의 존재가 나타납니다. 천천히 담배를 피고, 은희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며, 은희와 같은 왼손잡이인 한자 선생님 영지(김새벽 분). 작은 위로와 침묵, 가벼운 관심이나 말 한마디도 외로운 은희에게는 큰 존재입니다. “절대 맞고 가만히 있지 말라”라고 강조하던 선생님은 갑자기 사라집니다. 이후 은희에게 편지를 보내고 연락하지만, 은희가 찾았을 때 영지는 이미 성수대교 붕괴로 죽었습니다. 
 

3. 감상평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화 버전처럼, 이 영화는 25년전 우리나라 대치동 중학생의 삶을 디테일하게 구성해 냅니다. 모두 잊고 있었던 개인의 아픈 성장기가 사실은 시대상이 담긴 공동의 아픔이었음을 그래서, 공감가능함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아파트, 동네, 학교, 학원을 정교하게 재현하고, 당시 사회상이나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을 삽입하면서 현재 시점으로 그 시대를 가까이 체험하게 합니다. 거기에 인물들의 개성과 행동의 개연성이 더해져 큰 갈등구조 없이도, 오래 기억에 남을 하나의 강렬한 이야기가 촘촘하게 구성됩니다. 
 

<작은 아씨들>
-조: 가족이 투닥대고 웃고 하는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 중요할 것도 없는 얘기잖아
-에이미: 그런 글들을 안 쓰니까 안 중요해 보이는 거지
-조: 글은 중요성을 반영하지 부여하진 않아
-에이미: 내 생각은 달라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영화를 보며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중요할 것도 없다고 무시당해온 이야기가 계속 영화화되어 갑니다.
 

4. 관련 추천영화

 
<애프터썬>
  흐릿한 캠코더 화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시종일관 무슨 일이 벌어질 듯 불안합니다. 11살. 아직 어른도 아이도 아니지만 벌써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알아낼 수 있고, 아빠의 애정과 함께 기복이나 철없음도 느낍니다. 이성에 관심도 생겨납니다. 영화적 형식은 벌새보다 훨씬 강렬하지만 두 영화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유년 시절을 생생하게 다룬 영화입니다.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처럼 아이들에게 목숨건 사랑을 주는 게 아니라 그저 한번씩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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