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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연과 상상 (잠시지만 진실해지는 순간)

by 55도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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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왓챠 영화 추천)


1. 한줄평: 아주 잠시지만 진실해지는 그 순간을 담았다. 

감각한 대로의 현실은 우리가 믿는 현실과 너무도 달라서, 
우연이 그 삶에 대한 참된 추억을 가져다줄 때면 
우리를 그토록 큰 행복감으로 채워 주는 것이 아닐까?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2. 줄거리


  영화 ‘우연과 상상’은 우연과 상상과 관련된 별개의 3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보통 옴니버스식 구성에는 감독이 다른 기획영화가 많은데, 상당히 독특한 구성입니다. 에피소드 마다 제목이 있는데 각각 순서대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문은 열어둔 채로', '다시 한 번'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젊은 남녀 3인이 주인공입니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아주 느낌이 다른 두 명의 여자가 대화를 나눕니다.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와 츠구미(현리). 아직 격의 없이 친하지는 않지만 경계가 허물어질 듯 말듯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영화 내에서 대사와 연기로 표현이 매우 잘되는데) 이 대화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이 흐릅니다. 누가 누구의 상처를 건드린건가, 혹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좋아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츠구미가 먼저 도착하고 내립니다.  메이코는 집에서 내리지 않고 택시를 타고 다시 어딘가로 향합니다. 

우연과상상-우연과상상포스터


<아래부터 감상기 전까지 스포>

  메이코가 내린 곳은 전 남자친구 카즈야키(나카지마 아유무)의 작업실입니다. 택시 안의 대화에서 츠구미와 사랑에 빠진 대상이 메이코의 잦은 바람으로 힘들어 하던 본인의 전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에서의 대화도 택시에서의 대화처럼 대화만으로 둘의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드러납니다. 대화에도 스펙타클이 있다면 이런 식일 겁니다. 긴 대화를 거쳐, 둘의 마음이 통하려는 순간 엉뚱한(우연한) 여직원의 개입으로 무산됩니다. 결국 메이코는 츠구미와 카즈야키를 훼방놓는 상상만 마음껏 하고 놓아줍니다. 

쫀쫀한 긴장감.


  두번째 에피소드는 저명한 문학교수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에게 복수심을 품은 대학생 사사키(카이 쇼우마)의 복수를 대행(?)하게 된 늦깎이 여대생 나오(모리 카츠키)의 이야기입니다. 꽤나 지능적인 유혹에도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만을 드러내는 교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안타까운 실수로 결국 둘 다 몰락하는데 사사키를 우연히 다시 만난 그녀는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유혹합니다. 

 

쫀쫀한 긴장감2.


  마지막 에피소드는 놀랍게도 SF입니다. 이메일에 대한 바이러스가 퍼진 미래. 동창회에 참석한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우연히 동창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만납니다. 그녀의 집까지 가서야 그녀가 자기 동창이 아니라는 사실은 안 나츠코.  하지만 서로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비밀을 말하고 그 둘은 서로 동창의 역할을 하며 헤어집니다. 이를 통해 위안을 받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3. 감상기 


  첫번째 에피소드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의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드러냅니다. 먼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가 한껏 감정을 잡고, 이별한 연인의 대화를 통해 사랑의 관계에서 오는 독특한 흐름을 짚어내고, 결국 상상을 통해 해소합니다. 짧은 에피소드인데도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들이 드러나면서 관계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도 독특한데, 인상적인 면은 이야기가 요즘 유행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비틀거나 흔들지 않고, 그냥 보여진 그대로 힘있게 쭉 밀고나간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오히려 예상을 벗어나면서 이야기에 진실함이 실립니다. 

  저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아는 사이에게 속 깊은 얘기를 했다가, 족쇄가 되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우연이 겹겹이 쌓인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겨우 내뱉게 되는 진심, 그리고 해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과정을 잘 담아냅니다. 


  세 가지 에피소드 모두 우연히 벌어진 일을 통해 아주 잠시지만 진실해지는 순간을 담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호흡의 이야기지만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장면들을 볼 수 있어 두근거렸습니다. 한편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변화'라는 보편적이고 오래된 가치의 복권을 바라는 감독의 마음도 보였습니다. 

  보고 나면 못 견디게 입이 간질간질 해집니다. 누구든 함께 보길 추천합니다. 

 

4. 영화 밖 이야기 

 

  일본 영화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하마구치 류스케 연출 및 각본입니다. 제 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5. 관련 추천 영화

 

   - 천주정. 지아장커: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짧은 이야기에 깊은 감정을 담는다는 점이 공히 인상적입니다. 

   - 결혼이야기. 노아 바움백. 깊은 감정을 잘 다룬 대사와 연기가 일품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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