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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이동진 평론가 추천

by 55도 2024.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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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저자: 최은영
- 출판: 문학동네
- 발행: 2023.08.07.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한 소설집이네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아주 예전에 어느 상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문학상에 실린 (대상도 아니었던)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 독특한 개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내게 무해한 사람> <쇼코의 미소>등으로 좋은 작품을 계속 보여주고 있네요. 

 

이번 소설집 역시 강렬한 문장을 남기려는 시도 보다는 적은 인원의 작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특유의 터질듯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솜씨를 가감없이 선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권여선 작가의 추천사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희미한 빛을 찾아 어두운 허공을 오래 찬찬히 응시 한 자의 고요와 열기를, 마치 한 자루의 초에 불을 붙이고 그것이 타오르는 것 을 지켜보는 행위와 같은 경건함으로 그려낸다. 이런 문장은 당해낼 길이 없다.
나는 늘 최은영에게 다른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이것을 바라왔다는 걸 깨닫는다. 비슷한 것 같지만 읽을 때마다 생판 다른, 최은영은 그런 작가다. 

 

표제작의 마지막 부분이 너무 좋아서 남겨봅니다. 

 

나의 숨은 흰 수증기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발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볼 표정, 그 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 다. 나를 흘겨보면서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듯, 웃기는 사람 이라는 듯 짓궂게 미소 짓는 얼굴.
나는 재미있는 사람도, 웃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비정규직 은행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다이어트가 필요한 어린 여자애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일을 처리해줄 기계였고, 누군가 에게는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감정도. 생각도, 느낌도, 자기만의 언어도 없는, 반격할 힘도 없는 인형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타인을 바라보 는 시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무심했고, 더 나아가 무정하기까지 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나가는 말로라도 희영에게 칭찬을 한 적이 없었다. 희영의 통찰력, 글쓰기 능력, 절제력을 갖고 자기 삶을 운영하

는 능력에 대해서. 희영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어떤 의미에서 강한 사람인지 이야기해야 했던 사람은 당신이었는데도.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순당신의 초라함이 더 분명해지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희영은 언제나 당신의 인정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함께 글쓰기를 시작한 친구의 인정을, 모두가 느끼고 있 었던 희영의 재능에 대해서 희영 자신은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 었다.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가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나는 말했어야 했어. 당신은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쉬운)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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