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헤르만 헤세의 과도기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많이 읽었네요.
수레바퀴 아래서, 황야의 이리, 싯다르타,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등
항상 생각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책들을 청소년기에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란 고민을 충분히 해볼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되어 읽는 헤르만 헤세의 책들은 씁쓸합니다. 이미 많은 기회들이 지나간 뒤라서 그럴까요.
그래도 그나마 황야의 이리는 좀 나은 편입니다. 완숙한 중년의 삶의 변곡점을 잘 그려냅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헛살았다는 기분.
하지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면 그런 기분 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이 모순 그 자체가 인생이고, 죽고 싶을만큼 절망할 수 있기 위해서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진지함만이 열심히 사는 방법은 아닙니다.
크눌프 역시 그런 헤르만 헤세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자유를 찬양하는 듯하지만, 그 자유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인 걸 깨닫는 순간을 통해 묘한 위안을 주는 책입니다.
아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
발췌
나도 마찬가지야, 로트푸스. 하지만 마치 결혼이란 걸 자네가 고안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할 것까지는 없네. 그럼 잘 자게!
자넨 성경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어. 무엇이 진리인지, 인생이 본래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는 각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성경은 오래된 책이지. 옛날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날엔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모르고 있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성경 안에는 아주 아름 답고 멋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거야,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난 그것을 좀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걸. 이것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오늘 보아야 할 필 요는 없다고 말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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