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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

by 55도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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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의 소설가라고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입니다.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같은 소설집으로, 내내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성당 단편집, 그리고 대성당 단편>
인생은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는다는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 

젊음은 헛되이 사라지고, 부부는 여러 관계들에 휩쓸리고 부모자식은 쉽게 멀어지고 직장은 허무하게 잃게되며 한번 저지른 커다란 실수는 결코 만회할 수 없다. 

이 냉정한 세상에서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디쯤 와있을까. 

이 건조한 이야기 앞에서.

하지만 "대성당"은 단편집의 제일 마지막에 실려있는데 기존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소설이다. 

같은 단편집의 다른 소설들 처럼 내내 시니컬했던 남자가 겪게 되는 예상치 못한 일. 

 

소설의 마지막은 아래와 같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소설집은 여지껏 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 외부에서 온 결과(실직,변심,사고 등등)로, 혹은 사소한 실수로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을 "더러운 리얼리즘"을 통해 신물나게 보여준다.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답게 지나칠정도로 디테일을 살려 날카롭고 통속적이지 않게, 하지만 위악적이지도 않게 그대로 그려낸다. 

 

하지만 단편 "대성당"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히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희망이랑 비슷하지만 좀 다른 단어인 "계기".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무언가가 달라지게 되는 "계기"가 생길수도 있다는 아주 소극적인 희망을 다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기"를 기다려라. 그 남자의 삶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마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기타 단편 후기>

 

"깃털들" 아주 강렬한 이야기 혹은 삶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단편집을 시작하기 정말 좋은 이야기다. 집에 들어오는 애완 공작과 "못생겼다는 말도 아까운" 아기.
"셰프의 집"과 "보존", "칸막이 객실" 돌아킬 수 없으며,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인생의 문제들과 대면한다. 특히 부부간 부모자식간의 애정의 부재 혹은 쇠락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회적 환경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나서 더욱 인상깊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돼야 한다고 상상하란 뜻이겠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 그런 식의 상상 같은 건 내 안에 남아 있지 않아." -셰프의 집 중에서

 

우화 같은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은 굳이 따지자면 용기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동정은 그 상대방의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 아래서 공감이 된다. 공감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보이는 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
"비타민" 불황과 전쟁. 귀. 돈 앞에 무력감.
"신경써서" 단편들 내내 반복되는 음주문제와 실직, 그로인한 삶과 가족관계의 변화. (전기료를 안내서 내내 켜놓는 TV의 디테일함) 양쪽 모두 서로를, 또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열"은 가장 좋았던 단편이다. 환상과 공포, 불안과 희망이 뒤섞여서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거치고 나오는데 저만하면 나쁘지 않다 싶다. 솔직함 덕분일까. 물론 앞에 놓인 삶은 삶 자체로서 만만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데비와 할머니, 아내와 리처드,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굴레" 역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사소한 실수로 경제적인 기반을 날려버린 남자와 가족의 이야기. 아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모든 일이 쉽지 않아보인다.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아마 그러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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